아침 8시 반에 콘서타 18mg을 물과 함께 마셨다.
먹자마자 크게 체감되는 것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콘서타 자체가 느리고 꾸준하게 효과를 내는 약이니까. 드는 기분은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니면 살면서 처음으로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해 보는 것 때문에 드는 흥분인지 애매한 것이 전부였다.
낮 10시 반쯤부터 효과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약간 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을 시작하고 계속 집중할 수 있었다. 중간에 요청이 들어와도 해당 요청을 처리하고 바로 하던 일로 돌아갈 수 있었다(원래는 이 과정에서 거의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딴짓으로 빠졌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이제서야 내 머리가 제 할일을 다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잠깐 여유 시간이 났을 때 인터넷에 메틸페니데이트에 대한 것을 검색하려다가도 일을 계속했다. 이전에는 딴짓으로 계속해서 빠지는 정신을 계속해서 일 쪽으로 끌고 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딴짓을 하려는 정신을 일 쪽으로 끌고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빈도도 편차도 이전보다 훨씬 줄었다. 이전의 정신이 겨울 바람에 메마른 가지투성이 곧은 관목이라면 지금은 그 관목의 가지를 싹 잘라낸(물론 대패로 다듬어가며 한 것이 아니므로 조금씩 굴곡은 있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이 훨씬 곧고 명료했다(물론 전날 잠을 자지 못해 머리가 살짝 띵하긴 했다).
이 때 생각했다. 약을 증량하면 이것보다 효과가 더 좋아질 것 같다고.
12시 반쯤 커피를 한 잔 탔다. 유리 머그컵에 카누 스틱 두 개를 타서 온수를 가득 채웠다(약 80mg의 카페인이다). 지금까지는 커피를 퍼포먼스의 저점을 높이는 용도로만 사용했었다(전날 새벽 5시에 잠들어서 도저히 못 버티겠을 때). 오늘은 처음으로 커피를 고점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한다(실제 효과가 어떻든 간에). 물론 뜨거운 물만으로 채웠으므로 식을 때까지 기다린다. 구글에다 '메틸페니데이트 카페인'을 검색해 본다. 죽는다는 말은 없었으니 그대로 커피를 다 마셨다. 마시고 몇십 분 정도 양쪽 다리를 동시에 떨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커피가 컵 바닥에 눌러붙기 전에 컵을 씻었다. 평소보다 복잡한 건수들이 더 많았고 모든 일들을 훌륭하게 해결했다. 업무 전달시 적당히 표면적인 것들, 간단한 이유만 설명하던 이전과 다르게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하며 전달하게 되었다. 중간에 거래처의 연락을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 먹어야 하는 프로바이오틱스도 먹었다(이전에는 이런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먹는 것을 항상 잊어버리고 시간이 부족한 탓을 하곤 했다). 시간의 절대량 자체는 여전히 부족했지만 게으름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세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들을 내일로 밀었다는 느낌이었다. 항상 딴짓을 할 때마다 건드리던 웹게임도 오늘은 말 그대로 단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업무 시간을 꽉 채워 썼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다. 이전에 이런 느낌을 느꼈을 때의 일이 정사각형 수조에 정사각형 두부들을 얹어서 채우는 일이었다면, 오늘 느낀 것은 정사각형 수조에 돌을 채우는데 그 사이사이에 자갈들을 살뜰하게 채워서 빈 공간을 최대한 줄인 느낌이라 성취감은 더했다. 회전초마냥 삐죽삐죽했던 정신이 도자기처럼 매끈해진 느낌이었다.
추가적으로 장 트러블이 있어 화장실에 하루 3~4회 가곤 했는데, 오늘은 1회만 가도 충분했다.
퇴근 후에는 다른 잡일도 덮어두고 블로그에 상대적 장문을 2개씩이나 쓰고 퇴고했다(이 글과 바로 이전 글이다). 방금 깨달은 것이지만 식욕도 거의 없다. 현재는 합법적으로 약을 증량하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부작용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 기분 자체도 콘서타의 대표적 부작용인 '고양감'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약과 함께하면 항상 이런 기분일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모바일 게임에서 흔히 보는 '첫 결제 특전'에 지나지 않았다면... 꽤나 슬프고 그립고 그러겠지. 으허엉~ 으헝~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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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반이 넘어가며 급격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피곤하지만 머리가 강제로 깨어 있는 기분(수면부족과 카페인이 겹치면 자주 드는 그 기분)이 지속되고 있다. 커피 마시지 말걸. 마시지 말아야 제대로 된 작용과 부작용을 알 수 있는데. 증상 기록은 커녕 낮에 멋모르고 가불한 욕망이나 갚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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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15분. 약효가 떨어지며 기분도 효과도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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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1분. 피로하고, 명료함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가슴은 약간 들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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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45분. 11시 알람으로 자나팜정 0.5mg를 먹었다. 이전에 먹던 0.25mg보다 확실히 효과가 나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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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4분. 수면제 효과도 돌만큼 돈것 같다. 정시에 잠을 청한다. 저녁식사는 걸렀다.